한국교육원리학회는 1992년에 ‘교육학 패러다임의 전환을 모색하는 학문공동체’라는 뜻에서 발족된 <敎育原形硏究會> 라는 학술모임에서 비롯되었다. 교육원형연구회가 결성된 이후부터 오늘에 이르기 까지, 교육학의 학문적 자율성에 대한 반성적 문제의식을 지닌 대학 교수 및 교육학 박사 학위를 지닌 전문 연구원들이 매달 4째 주 토요일에 정기적인 소규모 학술 연구회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1996에 전문학술지인 <교육원리연구>를 창간하여 연구 성과를 발표하기 시작하여 2019년 1월 현재 제23권 제2호까지 간행하였다.
1. 연구회의 설립 취지
교육원형연구회는 1992년 4월 25일에 첫 모임을 가졌다. 이 모임은 기존 교육학의 연구전통 안에 자체의 학문적 토대를 함몰시키는 자기부식적 요소가 내재하고 있다는 통찰에서 그 학문적 정체성의 쇄신을 주장한 張相浩 교수(서울대, 교육학)의 이례적인 발언에 자극받은 일단의 젊은 교수와 연구자들이 장 교수의 교육론(후에 “교육본위론”이라는 명칭으로 불리움)을 좀더 본격적으로 공부해 보자는 취지에서 출발하였다. 당시에 장 교수는 지금에 와서는 “제1기 교육학”이라고 불리 우는 교육학의 전통에 강도 높은 비판을 가하는 한편, 교육의 새로운 지평을 모색한 중간성과의 하나로서 “교육의 재개념화”라는 주목할 만한 발표물을 내놓고 있었다. 이 모임이 회를 거듭하면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학풍을 지닌 “제2기 교육학”의 진로를 함께 모색해 보자는 공감대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고, 모임의 명칭도 “교육원형연구회”로 정하게 되었다. 회의 명칭으로 사용된 ‘교육원형’이라는 용어는 시간적인 차원에서 교육의 태고적 원형(archetype)을 찾자는 것이 아니고, 보편적 인간사의 하나로서 고유한 특질을 지닌 교육의 원형(prototype)을 탐색하자는 데에 그 본뜻이 있다. 그리하여 교육원형연구회는 교육학의 학문적 자율성과 정체성의 확립을 목적으로 하는 학술단체로서 출범하게 되었다.
2. “제2기 교육학”의 교육학적 신조
본래 학문이라는 것이 현재의 인식틀을 부정하고 대안적 지평을 개척하면서 발전하는 것이 상례이지만, 교육학의 경우에는 ‘잘못 끼워진 단추’처럼 애초에 출발부터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이 참여자들의 공통된 판단이었다. 현존의 교육학은 ‘학교가 교육하는 곳’이라는 상식을 토대로 형성되었다. 학교의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해 기성의 학문에서 창안된 개념과 방법을 여과 없이 받아들였다. 그것이 오늘날 교육철학, 교육심리학, 교육사회학, 교육행정학이라는 교육학의 전공영역을 이루었고, 여기에 학교의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교육과정, 교육평가가 추가되어 “교육학”이라는 이름으로 총칭되고 있다. 이런 교육학의 구성방식은 그 자체가 하나의 “歷史的 變故”로서, 분과학문으로서의 자율성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생활세계의 하나인 학교가 순수한 교육의 공간이라는 교육관은 상식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었다. 따라서 이를 수용하거나 강화하는 것은 결코 학문의 몫일 수가 없다. 또한, 여타 분과학문들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교육학을 성립시킬 수 있다고 하는 학문관은 명백한 “범주착오”로서, “교육적 사실”의 고유성을 타학문의 논리와 시각으로 왜곡하고 변조하는 논점이탈의 현상만 가속화시킬 뿐이었다. 더욱이 각 분과학문들의 대리점 격으로 교육학내에 자리 잡게 된 하위영역들은 상호내통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개념적인 단절이 심각했기 때문에 공통의 학문적 관심사를 발전시켜 나가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문제로 인식되고 있었다.
이처럼 기존의 교육학이 그 토대 전체를 문제 삼지 않으면 안될 만큼 굴절된 것이라면, 교육학의 재건을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反傳統의 길’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 모임의 독특한 “敎育學的 信條”로 받아들여졌다. 여기서 지금 있는 건물을 허물고 그 터 위에 새로운 건물을 축조하는 “건축공법”의 적용이 참여자들 사이에 고려되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기존 교육학의 모순과 한계를 비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교육의 원형적 형상을 묘사하는 두 가지 전혀 다른 작업의 병행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이런 작업을 감당하기 위해서 회원들은 개인적으로 두 가지 어려움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나는 이제껏 자신이 연마해 온 교육학의 전공을 부정하고 그 관련지식과 자료 모두를 쓰레기통에 던져 넣는 ‘거처상실’의 불안과 아픔을 견뎌내야 했다. 다른 하나는 교육학의 새로운 지평을 찾아 나서기 위한 이론창조의 험난하고 불확실한 도정에 스스로 헌신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여기에는 또한 기존 교육학계의 반발과 저항도 적지 않은 심리적 부담으로 작용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학의 전통을 새롭게 일신하려는 이런 노력 자체가 學問史에서는 지극히 정상적인 발전의 궤도에 해당한다는 사실은 회원들에게 커다란 용기와 자극이 되어 주었다. 그 가운데서도 20세기 전반기에 언어학 분야에서 소쉬르(F. Saussure)에 의해 주도되었던 구조언어학의 전례는 특히 의미 있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언어학의 경우에 초기에는 주로 빠롤(parole) 연구에 치우쳐 문법, 심리학, 철학, 사회학 등 언어의 맥락과는 맞지 않는 이질적인 학문들이 그 본류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쉬르의 등장으로 언어의 본질에 해당하는 랑그(langue)에 대한 연구가 언어학의 중핵을 차지하게 됨으로써 역전의 발판이 마련되었고, 이후 언어학이 이룩한 자율적 학문으로서의 재탄생은 20세기 인문학 분야에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연상케 하는 업적으로 학문사에 길이 남게 되었다. 언어학이 탈바꿈에 성공한 사건은 비슷한 처지에 놓인 교육학의 재건가능성을 한층 높여주는 고무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었다.
또 하나, 장상호 교수의 고뇌어린 결단과 그 독자적 학문탐구의 결실인 일련의 저작들은 교육학의 재건에 참여하려는 후진들에게 적어도 학문적 자구노력의 이론적, 실천적 거점이자 사표의 구실을 담당하였다. 본디 교육심리학을 전공한 그가 자신의 전력을 스스로 부정하면서까지 학문적 거듭남을 위해 보여준 치열한 여로는 그 자체가 스스로 재구성하고자 한 교육의 “전형적 사례”가 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학문계에서 하나의 분과학문이 탄생하기까지에는 예외 없이 개척자적인 정신을 가진 “이단적 무리”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들은 주변의 오해와 냉대를 받는 것이 보통이었고, 때로 현실의 제약과 불이익을 싸우면서 고통을 즐거움으로 감내하는 길을 택해야 했다. 그 점에서는 교육원형연구회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교육원형연구회는 교육을 영원한 미지의 항으로 삼고 그 미궁의 베일을 벗기는 과정을 통해 대안적 교육이론을 구성하려는 집단이라는 점에서 교육학의 새로운 미래를 기약하고 있다.